종친회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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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의 갑(琴匣)을 쏘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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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사국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5-09-02 17:24 조회2,8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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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新羅) 21대 비처왕(毗處王) - 소지왕(炤知王)이라고도 부른다 - 이 즉위한지 10년(戊辰 488년)에 천천정(天泉亭)으로 새해 나들이를 하였다.


○ 쥐와 까마귀의 이적(異蹟)

이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어대더니 쥐가 사람처럼 말을 하지 않는가!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십시오”
임금님께서 이상하게 여기시어 곁에 있는 신하에게 말씀하시어 그 까마귀의 뒤를 쫓아가보라 하시었다. 그래서 그 신하는 남쪽으로 날아가는 까마귀의 뒤를 쫓아 얼마를 가 남쪽으로 피촌(避村) - 지금의 양피사촌(壤避村)에 이르러 돼지 두마리가 무섭게 싸우고 있는 것을 보고 잠깐 그 구경을 하다가 그만 까마귀의 행방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신하는 당황하여 여기저기를 헤매며 까마귀의 간 곳을 찾아 나섰지만 까마귀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얼마를 헤매고 있을 때 연못 속으로부터 한 노인이 나오더니 한통의 봉서(封書)를 주면서 임금님께 가져다 드리라 하였는데 그 겉봉에 이렇게 씌여 있었다.
“이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
신하가 돌아와서 임금님께 올리니 임금님께서 이를 보시고 “열어보아서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열어보지 않고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지 않는가”하시고 열어보시려 하지 아니 하셨다.
이때 곁에 있던 일관(日官)이 정색을 하며 아뢰었다.
“두 사람이란 서민(庶民)을 이름이요 한 사람이란 임금님을 말함입니다”
임금님께서 그 말씀을 듣고 과연 그렇겠다 말씀하시고 그 봉투를 열어보았더니 그 글에 이르기를,
“금갑(琴匣)을 쏘라”고 하였다.
임금님께서 괴히 여기고 궁으로 돌아와 침전(寢殿)에 있는 거문고의 갑을 향하여 활을 쏘니 거기에는 내전(內殿)에서 분향수도(焚香修道)를 하던 중이 왕비(王妃)와 몰래 간통(姦通)을 하다가 숨어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임금님은 두 사람을 끌어 내어 엄한 사형(死刑)에 처해버렸다.
이때부터 나라 풍속에 해마다 정월의 첫번째 돼지날 첫번째 쥐날 첫번째 말날에는 모든 일을 조심하여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고 보름날이라 하여 찰밥을 지어 제사를 지내 까마귀의 공(功)을 잊지 않기 위하여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기념하여 오고 있다.
속담(俗談)에 이것을 달도라고 하였는데 슬퍼하고 근심하여 모든 일을 삼가하고 금한다는 말이다.
그 노인(老人)이 나왔던 연못의 이름을 서출지(書出池)라고 불렀다.


이때의 일관(日官)을 지냈던 분이 구례마(俱禮馬)할아버지의 15세손인 태재(太宰) 손주항(孫主恒)할아버지 셨다.


족보(族譜)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炤知王朝 佛法盛行 王妃與僧作姦 匿於琴匣 早朝有烏含書飛入王所 開封而看則 不開則一人死 開則二人死云故 公以太宰之任 勸王開看則 只書射琴匣 於是 王持弓射琴匣則 怪僧挾匕首而死 左右驚異莫不稱歎而 正月望日藥飯 報烏之功也

-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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