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회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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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과거제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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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3-06-10 11:23 조회2,7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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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도감영(各道監營)에서 실시하는 향시(鄕試)나 중앙에서 실시하는 생진과(生進科) 초시(初試)를 조흘강(照訖講)이라 한다.
이 조흘강에 합격하면 조흘첩(照訖帖)을 주는데 이것이 있어야 생진과(生進科)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진다. 이 조흘강을 초시(初試)라 하며 여기에 합격한 사람을 ○초시(初試)라고 부른다.
이렇게 각 지방에서 조흘강에 합격한 사람들이 4년만에 한번씩 과거(科擧)를 보는데 이러한 4년에 한번 보는 과거를 식년시(式年試)라고 하여 자(子), 오(午), 묘(卯), 유(酉)년에 실시한다.
그리하여 생원과(生員科)에서는 경서(經書)를 외우게 하고 또 그 뜻을 물어본다. 시험관(試驗官)에는 상시(上試 : 時任判書)와 부시(副試 : 時任參判)가 있어 응시자를 불러 십여 차례 외우게도 하고 질문도 한다.
그래서 등급을 통(通), 략(略), 조(粗), 불통(不通)의 4등급으로 나누어 통은 2점, 략은 1점, 조는 반점, 불통은 영점으로 하여 합계가 14점 이상이 된 사람을 합격(즉 급제)으로 판정한다.
이 생원과(生員科)는 경서(經書)를 외우게 함으로써 강경과(講經科), 또는 치경과(治經科)라고도 한다.
진사과(進士科)는 제술과(製述科)라고도 하며 본과시험(本科試驗)에서는 시험관들이 임석하여 감찰(監察)들로 하여금 차작차필(借作借筆)을 못하게 엄중히 단속하는 한편 제목(題目)을 내고 운자(韻字)를 정하여 시(詩)를 짓게 하며 시간을 엄격히 지키게 한다.
이에 응시자들은 각자가 준비한 종이와 필묵(筆墨)으로 시를 지어 장지(狀紙)에 18수(首)를 써서 봉하여 시험관에게 내고 물러난다.
그러면 시험관들은 그 시축(試軸)을 모아서 우선 글만 잘 지었으면 상상(上上), 상중(上中), 상하(上下), 이상(二上), 이중(二中), 이하(二下), 삼상(三上), 삼중(三中), 하하(下下) 이렇게 정한 뒤 상상은 9점으로, 하하(下下)는 1점으로 나누어 채점한다.
그리하여 대개 이하(二下)까지를 골라 급제(及第)로 정하였다. 이런 식으로 생원과 진사를 각 100명씩 200명을 뽑아 발표하였는데 발표자를 써붙이는 것을 방(榜)이라 하였다.
이 생진과(生進科)에 급제한 사람 가운데 대과(大科), 즉 문과(文科)에 응시하려는 사람은 성균관(成均館)에 입학을 허가 하였다. 다음에 대과(大科)에 응시하려면 우선 대과초시(大科初試)에 합격하여야 하는데 대과초시에서는 관시(館試:성균관출신) 50명 한성시(漢城試)에서 40명 향시(鄕試)인 경기(京畿)에서 20명 충청 전라(忠淸 全羅)에서 각 25명 경상도에서 30명 강원 평안도(江原 平安道)에서 각 10명씩을 뽑아 대과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이렇게 생진과(生進科)에 합격한 사람으로성균관을 거치지 않고도 대과에 응시할 자격을 주기 때문에 총 240명이 대과에 응시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대과의 제1차 시험을 초장(初場)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경서(經書)를 외우는 것이 생원과의 시험방법과 같다.
제 2차 시험은 중장(中場)이라 하고 이곳에서는 시부(詩賦)를 짓는 것이 마치 진사과의 시험과 같았다.
따라서 경서(經書)를 외우는데 자신이 있는 사람은 초장(初場)에 응시하고 시부(詩賦)에 자신있는 사람은 중장(中場)에 응시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초장에서 낙방한 사람이 중장에 응시하여 급제할 수 도 있었다. 선발 인원은 초장에서 16명, 중장에서 16명, 그리고 초장과 중장에서 성적이 우수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한 사람을 양장(兩場)의 시험관이 모여 선발하는 급제자를 생획급제(生劃及第)라 하였다. 그리하여 대과급제자 33명을 최종적으로 선발하였다.
이렇게 대과 급제자가 선발되면 이들이 참여하여 전시(殿試)를 치르는데 왕(王)이 친림(親臨)하여 최종 합격자를 가린다.
여기에서는 간단하게 대책(對策)이나 표(表), 전(箋), 잠(箴), 송(頌), 제(制), 조(詔)중에서 한가지만 짓게 하는 것인데 지금의 논문(論文)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이 전시의 결과를 보아 33명의 등급을 갑, 을, 병의 3등급으로 나누어 상위(上位) 3명을 갑(甲)이라 하고, 중위(中位) 7명을 을(乙)이라 하고, 나머지 23명을 병(丙)이라 하여 이것을 갑을병 3과라 하였다.
갑과에서 제일 잘한 수석(首席)을 장원랑(壯元郞)이라 하고, 차석(次席)을 방안랑(榜眼郞)이라 하며, 3등을 탐화랑(探花郞)이라 한다.
그리고 생진과(生進科)에 합격한 사람에게는 증서(證書)를 백지(白紙)에 써주었기 때문에 백패(白牌)라 하고, 대과에 합격한 사람에게는 홍지(紅紙)에다 써주었으므로 홍패(紅牌)라 하였다.
초장과 중장에서 최우수한 성적을 보인 급제자에게는 임금님이 친히 불러 암행어사(暗行御史)를 삼았고 벼슬길에서 승진도 빨랐다.
다음 무과(武科)시험에 대하여 알아보자.
무과초시(武科初試)도 문과(文科)와 같이 중앙과 각도 감영(監營)에서 행하는데 중앙에서 70명 경상도(慶尙道)에서 30명 충청 전라도(忠淸 全羅道)에서 각 25명 강원 황해 평안 함경도에서 각 10명씩 선발하여 총 190명이 중앙에서 실시하는 복시(覆試)에 응시하여 다시 그 중에서 28명을 뽑아 전시(殿試)에 응시토록 하여 활을 쏘게 하는데 제일 잘 쏘는 사람 3명을 갑과(甲科)에 합격시켜 그 중 첫째 가는 무사(武士)에게 장원랑(壯元郞)이라 이르고 다음을 방안랑(榜眼郞) 세번재를 탐화랑(探花郞)이라 하였다.
다음 을과(乙科)에 5명, 병과(丙科)에 20명을 각각 선발하였다. 이상과 같이 과거에 급제하는 사람은 양반(兩班)의 자손들만이 가능하였고 중인(中人) 이하의 신분을 가진 사람은 감히 응시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잡과(雜科)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중인(中人)들이 볼 수 있는 과거 제도였다.
외국어(外國語)를 배워서 역관(譯官)을 하는 역과(譯科)라는 것이 있는데 초시(初試)에 한어(漢語) 23명 몽고어(蒙古語)·일본어(日本語)·만주어(滿洲語)등은 각각 4명씩을 뽑아 다시 복시(覆試)에서 한어(漢語) 13명 몽고어·일본어·만주어는 각각 2명씩을 선발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문과출신 대관(大官)들의 수행원으로 통역업무를 담당하였다.
그외 의과(醫科), 산과(算科), 율과(律科), 음양과(陰陽科)등이 있었는데 그것도 모두 초시(初試)와 복시(覆試)을 거치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모든 과거가 4년 즉 자(子), 오(午), 묘(卯), 유(酉)년에 주기적으로 행하여졌다.
그러나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는 특별히 증광시(增廣試) 또는 별시(別試)라고 하는 특별 과거가 있었고 또한 임금이 성균관(成均館)에 행차하였다가 성균관 학생들에게 시험을 보이는 알성시(謁聖試)라는 것이 있으니 이것은 식년(式年) 이외에 치르는 시험이다.
이 알성시에서 장원으로 급제하는 것을 알성급제(謁聖及第)라 하여 급제중에 가장 영광스러운 것으로 여겼고 이 사람은 대개 암행어사(暗行御使)로 나가는 것이 통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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