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密陽 孫氏의 由來와 德谷(덕실) 集姓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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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7-10-31 15:39 조회2,4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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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史硏究委員長 孫 泰 根


密陽 孫氏(혹은 密城 孫氏라고도 함)의 시조 휘 順의 起一世로부터 二五世가 되는 문과 현감 鶴陰公(학음공) 휘 台佐 派祖의 設壇碑(설단비)와 德谷齋(덕곡재) 그리고 또한 密城君 휘 贇(빈)의 八世孫 逸齋公 휘 敬儉(世宗 16年 서기 1434年) 以下 六世를 奉祀하는 齋宿所로 일재공의 六世孫이 되는 箕隱公 휘 命一(숙종 6年 1660~영조 35年 1759年)이 영산 都泉에서 德谷里에 還鄕하여 先代가 壬亂後 靈山으로 移居하여 四世를 살다가 祖鄕을 잊지 못하다가 덕곡에 尊居하자 그 祖上님들을 추모하는 尙德齋를 지어 뫼시고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덕곡리(덕실) 마을에 모여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이 덕실 마을에는 전부해서 대략 50여 호가 世居하고 있지만 산업화와 더불어 농촌인구의 도시집중화 현상이 일어나기 전에는 밀양 손씨가 약 100호 이상 거주하는 보편적인 영남 氏族 貫鄕의 시골마을이었습니다.

그 동안 대개 이 마을이 밀양 손씨의 大宗派의 집성촌으로 形成되면서 발전하고 由來되는 과정과 흐름 그리고 모습을 대략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경남 밀양시 부북면 덕곡리 덕실 마을에 세거하고 있는 밀양 손씨 家門도 전국에 다른 모든 밀양 손문의 후손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오랜 氏族가운데 하나임을 자부합니다.

우리니라에서는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역사책으로 三國史記나 三國遺事를 보면 한반도 북쪽 옛 古朝鮮 강역에서 남하한 六部族들의 遺民들이 서기 기원전 二世紀 경 三韓시대 辰韓땅에 살고 있었는데, 점차 인구가 증가하면서 사회질서가 복잡해지고 문란하여 부족들의 생활이 위협을 받게 되자 기원전 57年에 六部村長이 和白會議를 거쳐 혁거세(赫居世)를 첫 신라국(처음에는 사로국) 王으로 추대하여 오늘날과 같은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 후 東國通鑑에도 보면 서기 33年 제 三代 유리왕으로부터 우리나라 최초로 孫氏賜姓을 받은 六部村長 가운데 한 분인 茂山大樹村長 휘 俱禮馬께서 孫氏의得姓元祖(손씨의 성씨를 처음 하사받은 할아버지)가 되십니다. 휘 구례마께서는 처음에 지금의 경주시 서북쪽 伊山에 하강하여 점량부 혹은 모량부를 설치하였습니다. 최근 1995년부터 古代유적 발굴조사에 의해 발굴된 무산대수촌의 위치는 현재 경주시 건천읍 사라리와 주변인 금척리 모량리 일대와 현곡면 남사리 소현리 일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뒤로 신라 法興王 3年 서기 516年 무산대수촌장이 시호를 忠烈君으로 추봉되고 太宗 武烈王 3年 서기 656年에 文義王에 추대될 때도 世居地는 거의 위의 지역들에서 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서기 835년 신라 흥덕왕 10년에는 出天大孝이신 始祖 휘 順께서 계십니다.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에 의하면 孫順은 그후 月城君에 封해지고 文孝公의 謚號(시호)를 받았으며, 密陽, 平海, 慶州(月城) 孫氏의 시조가 되셨습니다. 墓所는 현재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유허지와 祠堂은 경주시 현곡면 소현리에 있습니다.
시조 할아버지가 처음 살던 옛집은 경주시에서 서북쪽으로 醉山(취산)아래 종꼴마을 입구에 있었는데, 그 당시 옛집을 희사하여 절로 삼고 널리 효를 펼치라는 뜻으로 弘孝寺라 불렀습니다. 따라서 이 당시에 윗대의 世居地는 주로 月城으로 그 이전에 서라벌 보다 훨씬 넓은 지역으로 확장된 것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

세월은 계속 흘러 始祖 文孝公의 두 아드님 富字와 秀字 다음에 휘 富字의 아드님으로 三兄弟가
출생하게 되어 이 할아버지들이 각기 다음과 같은 지역에 封君(봉군)을 받게 됩니다. 즉, 시조 文孝公의 長孫인 三世 휘 翼減(익감)께서는 나라에 공을 세워 凝川君(응천군)으로 封해졌으므로 비로소 後孫들이 貫鄕을 密城 또는 密陽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분명히 밝히고자 하는 것은 “응천”이라는 지명은 “밀성이나 밀양의 구명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文孝公의 次孫인 三世 휘 翼淡(익담)께서도 역시 나라에 공을 세워 平海君(평해군)으로 봉해졌으므로 平海 孫氏로 하게 되었고, 또한 文孝公의 季孫인 三世 휘 翼洹(익원)께서도 나라에 공을 세워 慶州君(경주군)에 봉해져 慶州 孫氏로 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시조 文孝公의 長孫인 三世 翼減(익감) 응천군 때부터 文孝公의 7世 廣理君때까지의 시기는 世居地가 주로 月城지역으로부터 凝川 즉, 淸道 一部를 포함한 楡川流城을 따라 密陽 南川江 上流 유역과 推火山(추화산) 일대를 포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응천지역을 포함해서 현재 추화산 지역까지를 이른바 구 밀성 내지는 밀양지역이라 부를 수 있을 것 입니다. 따라서 휘 익감 응천군 때부터 비로소 貫鄕을 密城 혹은 현재는 密陽 이라고 登載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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