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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물 손치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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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7-02-08 12:13 조회2,5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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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잊혀진 인물 ‘손치은 변호사’

손치은(孫致殷) 변호사는 시조 문효공의 43세손이며 목사공파 후손으로 1892年 12월 25일 아버지 손종권(孫淙權)씨와 어머니 광산 김씨 김초심(光山金氏 金草心)의 외동 아들로 대구(大邱)에서 태어났다.
망국(亡國)의 설움속에 절치부심하여 고등문관(高等文官) 시험에 합격하여 나라 잃은 슬픔을 한(恨)하며 일제(日帝)의 민족탄압에 앞장서 저항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 소리가 잦아들 무렵 한을 안고 살던 민초(民草)들은 곳곳에서 끊임없는 저항을 지속하였다.
경북 안동(安東)의 안동천(安東川)에서 악질적으로 백성들을 괴롭히던 일제의 순사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혈안이 된 일본 경찰들은 무고한 젊은이들을 잡아다 가혹한 고문으로 살인(殺人)의 누명을 씌워 구속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손 변호사는 발벗고나서 이 사건을 맡아 무료변론으로 피나는 투쟁을 하여 재판과정에서 무죄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손 변호사는 전남 보성군 노동면 금호리에 있는 목사공 재실(이로재)이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재산을 빼앗겼을 때 재판에 협조하고 재정적으로도 큰 도움을 주는 등 조상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손자 영철(英徹)씨가 지금도 대구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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