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성군 온성 승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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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7-02-08 12:11 조회2,347회 댓글0건본문
조상들이 찾아나선
밀성군 온성 승전비(密城君 穩城 勝戰碑)
순조(純祖) 辛酉(1801)년 6월에 전라북도 고부(古阜)에 사는 일가 종효(宗孝)씨가 밀성군(密城君)의 온성대첩비를 찾기위해 함경북도(咸鏡北道) 온성(穩城)에 갔더니 그 비(碑)가 나단방(羅丹坊)의 산골짜기에 있는데 그 비(碑)의 앞면에 정북대장(征北大將軍)이라 되어 있고 그다음 글자들은 이끼가 되고 부식(腐蝕)있어 잘 분간할 수가 없었으나 그 아래 쫛공빈(쫛公贇)의 비라고 되어있었다.
살펴보건대 이 비(碑)는 우리 선조(先祖) 정당공(政堂公)의 승전비(勝戰碑)임이 틀림없고 멀리 고려 충렬왕(高麗忠烈王)때 세운 것이라 보여진다.
천년(千年)의 세월이 흘렀으나 어제일과 같이 확실하니 그 감회(感懷)를 이길 수 없어 삼가 경건한 마음으로 이것을 베꼈다. 이 해 섣달에 집에 돌아와 다음해인 壬戌年에 수보소(修譜所)가 운봉(雲峰)에 차려졌다.
아! 아름답구나! 종효(宗孝)일가의 정성이여 수천리밖의 옛터와 사적(事蹟)을 찾아 후손(後孫)들에게 남기었으니 마치 그 정성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우연(偶然)이 아니다. 감탄(感歎)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명대(命大)일가는 종효(宗孝)일가의 사연을 듣고 여기에 이를 기록(記錄)한다.
밀성군 온성 승전비(密城君 穩城 勝戰碑)
순조(純祖) 辛酉(1801)년 6월에 전라북도 고부(古阜)에 사는 일가 종효(宗孝)씨가 밀성군(密城君)의 온성대첩비를 찾기위해 함경북도(咸鏡北道) 온성(穩城)에 갔더니 그 비(碑)가 나단방(羅丹坊)의 산골짜기에 있는데 그 비(碑)의 앞면에 정북대장(征北大將軍)이라 되어 있고 그다음 글자들은 이끼가 되고 부식(腐蝕)있어 잘 분간할 수가 없었으나 그 아래 쫛공빈(쫛公贇)의 비라고 되어있었다.
살펴보건대 이 비(碑)는 우리 선조(先祖) 정당공(政堂公)의 승전비(勝戰碑)임이 틀림없고 멀리 고려 충렬왕(高麗忠烈王)때 세운 것이라 보여진다.
천년(千年)의 세월이 흘렀으나 어제일과 같이 확실하니 그 감회(感懷)를 이길 수 없어 삼가 경건한 마음으로 이것을 베꼈다. 이 해 섣달에 집에 돌아와 다음해인 壬戌年에 수보소(修譜所)가 운봉(雲峰)에 차려졌다.
아! 아름답구나! 종효(宗孝)일가의 정성이여 수천리밖의 옛터와 사적(事蹟)을 찾아 후손(後孫)들에게 남기었으니 마치 그 정성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우연(偶然)이 아니다. 감탄(感歎)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명대(命大)일가는 종효(宗孝)일가의 사연을 듣고 여기에 이를 기록(記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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