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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怨恨)의 굴묘편시(堀墓鞭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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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대들보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7-19 16:40 조회1,6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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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三伏)중 가장 더위가 극심 하다는 중복(中伏),,,,,
장마전선도 물러가고 찌는듯한 더위로 가장 힘들때 인데 어느 해오년 이던 여름 휴가때면 산천(山川)의 계곡마다 피서객들은 장사진을 리루고 너나 할것없이 더위를 피하려 가족이나 친지 이웃이나 각종 모임의 동료들과 함께 한여름을 즐겁게 물가나 산속으로 피서를 떠나는데,,,,,

필자는 단양팔경의 하나인 충주호의 월악도 마찬가지로 인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피서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청록(靑綠)의 충주호나 주의에 천연(天然)의 아름다운 풍경(風景)을 바라 보면서 자연을 감탄(感嘆)하며 된다,

오랜만에 낚시 동호인들과 함께 여유있게 유유자적(悠悠自適) 하면서 복중(伏中) 한 여름밤 충주호의 한기(閑嗜)를 느끼려 낚시대를 펴면서 손맛의 그리움을 못잊어 한가함을 틈타 자판을 놓고 글을 올려 봅니다,

낚시꾼 이라면 누구던지 자신이 선호하는 낚시터를 찾는데 가끔은 동료들과 자주 들리는 넓은 충주호의 자리중에서도 입질이 좋은 " 꽃바위 낚시터 " 를 자주 찾게 되는데 언제나 그랬드시 동료들과 정기출약(定期出約)에서 지난번 꽝조사(ㅇ釣士)의 복수를 위하여 마음깊이 크게 기대하며 잠시 낚시대를 담그는 모습을 보면서 대자연(大自然)의 속세(俗世)에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됨니다,

올해는 유난히 강수량이 적어 극심한 가믐으로 농업(農業)을 기반으로 하는 농민은 농수용 어려움이 많다고 하는데 평년 이맘때면 천둥, 번개, 뇌우(雷雨)등 장마로 인한 산사태 태풍등 강한 비바람에 사람의 생명마져 제물(祭物)로 삼아가며 마음을 조이게 하던 고르지 못한 일기는 이제는 가믐으로 자연마져 매말라 고사의 위기에 있는데,,,,,

하늘에 노여움인가 ? 우리 인간에 힘으로는 어쩔수 없는것 그러나 긴 장마나 가믐의 세월에도 벼랑에 피는 들꽃은 시들지 않으며 놀라지도 않고 오는 비를 반기는듯 가냘푼 잎은 바람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데 우리 인간은 혹시 벼락이라도 하는 두려움 일까 그러나 두려움 없이 야생화(野生花)는 자연을 노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농작물(農作物)은 주인의 발자욱 소리만 들어도 자란다고 합니다,
자연이 가져다 주는 산해진미(山海珍味)의 진귀(眞貴)한 진미(眞味)의 음식을 섭취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보약 이라는 미명도 그 수(數)가 천만 가지나 되는듯 하다,,

전설(傳說)에 의하면 조선시대 영조(英祖)가 즐겨 먹었다는 보양식 음식중 사슴의 꼬리가 8 대 진미(眞味)중 하나로 복용하여 장수 하였다는 전설(傳說)도 있다고 한다,

낚시를 취미로 하는 꾼들은 입질을 찾아 출조(出釣)는 고정으로 가는 터가없이 전국을 일주 하는데 지난해 여름에 는 강원도 화천에 위치한 파라호에서 여름 낚시를 하게 되였는데 파라호는 6, 25 동란때 중공군과 북한 괴뢰군 3 만명을 수장(水葬)시켜 대승(大勝)을 거두웠다는 유서깊은 곳으로 " 비목 "으로도 유명한 파라호에서 청승맞게 울어대는 매미들에 울음소리를 벗삼아 낚시대와 시름하며 한여름 밤을 지새웠는데,,,,,

파라호나 충주호의 물속깊이 비추는 야경(夜景)을 바라보며 지난날 추억을 회상하며 무아지경에 젖어 있으려니 여름의 물가에서 들려오는 맹꽁이와 개구리의 울음 소리와 밤늦도록 숲에서 청승맞게 우는 매미 소리는 박자나 음정하나 틀리지 않고 울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정겨운 이한밤을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 합니다,

주지 하시고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 오(吳) 나라의 합려(闔閭)의 충신(忠臣)으로 오자서(伍子胥 ; ? ~ BC 484 년) 字는 자서 이고 이름은 원(員)으로 초(楚) 나라 사람으로서 아버지 오사(伍奢)의 둘째 아들로 태어 났다,

아버지는 평왕의 아들인 건(建)의 스승으로서 태부(太父)의 직책으로 있을때 " 비무기 "가 " 오사 " 를 시기하여 평왕에 참소하자 교활함에 아버지와 형을 잃게 되자 복수를 기약하고 오(吳) 나라로 망명 하였다,

송(宋)나라와 정(鄭)나라를 거쳐 오(吳) 나라로간 오자서는 합려(闔閭)를 보좌하여 오(吳) 나라를 강국으로 키우며 BC 506 년 오나라가 초(楚) 나라를 함락 시킨뒤 오자서(伍子胥) 는 평왕의 아들 소왕(昭王)을 잡으려 하였으나 도주한 후였다,

오자서는 평왕의 묘(墓)를 찾아 시신을 파낸뒤 채찍질을 300 번을 함으로서 복수 하였는데 굴묘편시(掘墓鞭屍)라는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유래(有來) 된것 입니다,

감정(感情)은 감정을 낳는법 오(吳) 나라에서 병법(兵法)의 대가 손무(孫武)를 만나게 되여 마침네 오자서(伍子胥)는 뜻을 이루게 되여 원한을 갚으려 초(楚) 나라를 처들어 갔는데 평왕은 이미 죽어 그의 무덤을 찾아 나서게 되였다, 평왕은 살아생전 이미 오자서의 보복을 예견하고 자신의 무덤을 연못 속에다 묘(墓)를 조성 하였다고 하며 묘(墓)를 종사한 일꾼들도 모두 사형을 시켜 묘를 찾을수 없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옥에도 티기 있는법 그 산역 작업을 한사람중에 한사람이 살아 있다고 알려와 작업한 노인을 찾아 모든 이야기를 들은 오자서(伍子胥)는 평왕이 묻힌 연못에 물을빼고 무덤을 파 헤쳐 시체의 유골을 철정(鐵錠)으로 쳐서 뼈가루를 분쇄하여 원한에 한풀이를 하였다고 합니다,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가 이말을 듣고 아버지와 형의 복수라고 하지만 복수의 방법이 너무 잔인하고 지나치지 않는가 ? 라고 하였다고 말하며 묘(墓)를 파서 시체(死體)를 매질 한다고 하는 것을 굴묘편시(掘墓鞭屍)의 고사의 유래(有來)가 되였다고 하며 이렇게 난세(亂世에 개국(開國)을 하나 언제나 정권 이양에 있어서는 충신(忠臣)과 간신(姦臣)이 따르게 마련 입니다,

결국 춘추시대 한사람의 정치가로 일생을 보낸 오자서(伍子胥)는 초(楚)나라 사람 이였으나 아버지와 형이 살해당한 뒤에 오(吳) 나라의 왕 합려를 보좌하여 강대국으로 키웠으나 합려의 아들 부차에게 중용되지 못하고 수난의 삶을 살았는데 오자서(伍子胥)는 결국 모함을 받고 자결을 하여 한많은 일생을 마쳤다,

필자도 칠십의 평생을 넘게 살아오면서 주의에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일반 가정에서도 효자(孝子)는 부모가 만든다고 하며 자식은 부모를 섬기기를 다하여라 하였거만 근대에 와서는 개인 주의도 모자라 모두가 꿈인양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였으니 지난날 사라진 영웅호걸들이 부러울뿐 입니다,

지각 변동의 대 자연이 삶을 허락 하는대로 우리는 주워진 삶을 살아 가는데 천수장생(千壽長生)을 누리며 삶을 살아갈것 같은 인생사도 단 백년을 못사는 한명(限命)이 있고 잠시잠간 어려움이 있다고는 하나 모든것은 세월이 해결(解結)하여 준다고 합니다,

한겨울 하늘에서 많은 눈(雪)을 뿌린다고 해도 언젠가는 다 녹아서 없어지며 칠년대한 가믐에도 비는 꼭 내려주며 억수장마 많은 물도 바다가 모두 유입시키며 자연의 생활에는 이렇게 편안함과 어려움을 이렇게 자연의 이치를 가르쳐 줌니다,

그리고 역사는 영원 하다는 것이며 시대적 한지역의 주민은 이웃으로서 굴레에 얽혀져 있는정 없는정 풀어가며 한생을 살아가며 결집하는 종친(宗親) 으로서 조금씨 양보하고 이해하며 애정어린 사랑과 종족간에 우의를 나누며 우리 밀양손문(密陽孫門)은 사람사는 냄새가 풍기는 종친회가 되였으면 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빌어 봅니다,,,,,,,,,,,^&^,




北部支會長 明泉公派 孫 秉 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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