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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당문답(公堂問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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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대들보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6-14 11:02 조회1,58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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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언제였던가 ? 현충사 복원 현장생활 아산의 온양 염치읍 은행나무 숲의 터널를 지나려면 봄이온줄 알고 한여름 매미들에 울음소리를 들을때 여름이 온줄알고 은행알을 깨어 언탄불에 구을 때면 가을이 온줄알고 가로수 낙엽진 가지에 차가운 찬바람 삭풍의 세월은 겨울을 맞이하면서 그렇게 한해를 보냈는데,,,,,

은행나무 잎이 지천으로 쌓여 있는 사이길로 걷다보면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고작 이런 것인가 싶은듯 모르게 허무(虛無)와 우수(優秀)가 침잠(寢潛)하는 요즘인것 같은데 한여름 찌는듯한 더위와 짧은밤 낚시와 시름하며 보내는 것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겠지만 그래도 한겨울 긴긴밤은 다행 스럽게도 밤이 길으니 책을 읽기는 더없이 좋은 계절(季節)이기도 합니다,

호롱불을 벗삼아 독서(讀書)하는 하절기(夏節期)와 동절기(冬節期)의 운치(韻治)와 고아(古雅)한 맛은 없다만 긴긴밤 한겨울 밤에는 서둘지 않아도 여유기 있어서 좋은데 한 여름철에는 그렇지가 못하다,

전통한옥(傳通韓屋) 도편수(都片首)로서 산사(山寺)에서 사찰(寺察)을 건축하며 지나온 그 시절 불교(佛敎)의 불경(佛經)에 관한 여러 서적을 탐닉(耽溺) 하노라면 흠집(歆集)난 육신(育身)으로 허덕이는 삶이 한낱 꿈에 불과 하는 허망(虛妄)임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또한 크나큰 가르침을 남기고 간 옛 고승(高僧 : a high prelate ) 들에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초연(初演)하게 비움과 버리기로 일관하며 오르지 수행(修行)을 정진(正進)하는 고난(苦難)의 삶을 엿보게 되는데 깊은밤 어디선가 울리는 맑은 풍경(風磬)종소리가 문득 우리의 생명이 유한(有限) 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것 같다,

밤낚시를 하다보면 물가에 빛추는 달빛이 손에 잡힐듯 가까운데도 잡을수 없는 애잔함에 안타까운 것처럼 그리고 그 달빛에 비친 우리에 그림자는 내 것이면서도 온전히 내것이 아닌 것처럼 잡히지 아니하니 우리의 삶 또한 그와 마찬가지인 것이 아닐런지는,,,,,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1360 년 고려(高麗) 공민왕 9 년 태어나 1438 년 이조 세종(世宗) 20 년 까지 태종과 세종조의 명재상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은 황희(黃喜) 정승과 함께 조선 전기의 문화창달(文化昌達)에 크게 기여 하였고 청백리(淸白吏)로서 후세인(後世人)에 까지 모든 사람들의 귀감(貴感)이 되는 훌륭한 분으로 그는 지위가 정승에까지 올랐는데도 재물(財物)에 욕심이 없고 청렴(淸廉) 하기로 유명하다,

1432 년 좌의정(左義政)에 오르고 나이가 많아서 1435 년 벼슬을 사임하고 물러나 있어도 중요한 정사(政事)가 있으면 반드시 그에게 자문을 구(求)하였다고 한다,

우리 문중 종친회 사무처 " 손교영 " 종사국장님의 고향인 충남 아산의 온양인근 선생의 고택(古宅)을 방문해 보면 맹사성(孟思誠)이 얼마나 청렴하고 재물(財物)을 탐(貪)하지 않았던 올곧은 선비 였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으며 당시 영의정(領義政)까지 지낸 재상의 고택이 이렇게 소박하고 아담할수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부러울게 없을 만큼 명예와 권력이 정점(頂點)에 있으면서도 선생의 평소 생활이 그지없이 검소(儉所)하여 늘 남루한 입성을 마다않고 특히나 청렴결백(淸廉潔白)한 공사 생활은 후세에 까지 많은 감명(感明)으로 공복(公僕)이라면 당연히 본받아야 할 가르침을 주고있는 것이다,

탐관오리들이 판을 쳤던 당시의 조선사회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청렴 하면서도 반듯하게 살다간 선생의 사상(思想)과 가치관(價値管)은 후세(後世)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족적(族籍)을 들러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으며 두루 알고있는 그 유명한 공당문답(公堂問答) 에서도 선생의 고아한 인품이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루는 " 맹사성 " 이 온양에 있는 부모를 찾아뵙기 위하여 길을 떠났는데 평범한 입성에 나이어린 하인 한명만 데리고 소를 타고가는 그 모습은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시골 촌부의 모습 이였다,

해가 저물자 " 맹사성 "은 주막에 들려 밥을 먹는데 어떤 젊은이가 맹사성을 놀려먹을 요량으로 묘한 문제를 냈다고 하는데 서로 묻는말에 대답을 하는데 말의끝을 묻는 말에는 " 공 " 으로 대답하고 대답을 하려는 쪽은 " 당 " 으로 하자고 했다,

그 유명한 공, 당 문답(問答)이다,
" 맹사성 " 이 먼저 그 젊은이에게 물었다,

" 젊은이 어디로 가는 길인 공 ? "
맹사성의 물음에 젊은이가 대답했다,
" 벼슬하러 한양에 간 당 ",

맹사성이 재차 물었다,
" 내가 젊은이에게 벼슬을 줄것 같은 공 ? "
젊은이가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 하하하 ! 노인장 말이 너무 웃습 당 ",

그로부터 얼마후 맹사성이 한양으로 돌아와 입궐(入闕)해서 일을보고 있는데 과거시험에 급제한 사람이 인사를 하러 들어와 큰절을 올렸는데 맹사성이 자세히 보니 얼마전 고향길에서 본 그 젊은사람 아닌가 ? 맹사성은 젊은이를 바라보며 장난스레이 한마디 던지는데,,,,,

" 그래 나를 다시만난 소감이 어떤 공 ? "
그 젊은이는 바닥에 엎드려 얼굴을 들지 못하고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 그저 죽고만 싶 당 ",
맹사성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 젊은이를 불러 축하의 말을 전(傳) 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정경이다,
고불정승의 태산같은 너그러움과 사랑이 바람결에서 꺽이는 대나무 잎새의 청량함 처럼 은은한 향기가 전해오는 듯한 인생에 참다운 멋은 부귀 영화가 아니라 이처럼 청렴함과 넉넉한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인생에 그윽하고 향기로운 맛은 좋은 술과 기름진 음식에 있는것이 아니다,
쓴 나물을 씹고 한그릇 찬물을 마시더라도 마음이 거울같이 깨끗하면 그것이 참다운 인생의 맛을 즐기며 살아가는 아름다움 일 것입니다,

무엇하나 걸림돌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맑은 피리 소리가 울려 나오는듯 하고 은은한 난초(蘭草)의 향이 묻어나는듯 한데 정치권에 극에 달한 파렴치와 졸부들에 탐욕 스러운 삶의 형태와 우리를 더없이 우울하게 하는 노숙자의 비애가 뉴~스를 타고 있습니다,

쌀을 아흔 아홉섬을 가지고도 한섬을 못채워 허덕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하는데 그래서 탐욕(貪慾)이란 끝이 없고 종내는 스스로 망친다고 하는데 이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성어가 달래 나온것이 아니며 적당한 때에 비워낼줄 알아야 자멸(自滅)의 화(禍)를 피해갈수 있다고 합니다,

가난한 자의 곤궁은 아품이지만 가진자의 탐욕도 고통에 굴레일 따름이며 고즈넉한 산사(山寺)의 처마끝에서 울리는 풍경 소리를 들으며 " 고불정신 " 청백리(淸白吏)의 삶을 닮아 보고 싶은 마음의 삶 입니다,,,,,,,,,,,^&^,


北部支會長 明泉公波 孫 秉 文,




댓글목록

손교영님의 댓글

no_profile 손교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항상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세종때의 명재상 황희와 맹상성 두 정승이 있어 그 조선 초기의 기틀을 다져 놓은 것 같습니다.
"고불정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청백리(淸白吏)"로서 오늘날 위정자들이나 지도층이 꼭 배워야 할 덕목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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