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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천하(女人天下) 양귀비(楊貴妃),,,,,(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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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대들보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4-05 00:16 조회2,5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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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댱나라 현종(玄宗) 때 경국지색(傾國之色), 절세가인(絶世佳人)의 상징인 719 년 ㅡ 756 년에 양귀비(楊貴妃) 가 태어났는데 본명이 양옥환(楊玉環)인 그녀는 빼어난 미모와 총명 하였으며 가무(歌舞)에도 뛰어난 솜씨를 지녀 현종(玄宗)의 마음을 사로잡아 시대의 흐름을 바꾸면서 일세를 풍미하다 38세의 젊은 나이로 생(生)을 마감 하였다,

현종(玄宗)은 조모(祖母)인 측천무후(則天武后)의 뒤를이여 28 세 잚은 나이에 황제(皇帝) 자리에 올라 명상(名相)들을 등요(登用)하여 민생의 안정(安政)을 꽤하며 수십년의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었다,

노년(老年)에 접어 들면서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게된 원인이 총애하던 무혜비(武惠妃)가 죽게되자 마음둘곳이 없던 차에 아들인 수왕(壽王)의 비(妃)가 되여있던 양귀비(楊貴妃)가 죽은 무혜비(武惠妃)를 빼어 닮았고 미모(美貌)가 수려하여 35 세나 연하(年下)인 딸과 같은 양귀비의 품안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당대의 최고(最高) 시인(詩人) 이였던 이백(李白)이 활짝핀 모란에 비유 하였으며 절세미인 이였던 양귀비(楊貴妃)가 하루는 정원을 거닐며 꽃구경을 하다가 한 꽃을 쓰다듬으며 탄식을 하였다,

" 꽃아 꽃아 너는 해마다 다시피어 너의 아름다움을 계속 발산 할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다시 밫을 볼수 있단 말이냐 " 라고 양귀비(楊貴妃)가 말을 마치자 마자 그 꽃은 고개를 숙이며 오그라 들면서 꽃잎이 말려 들어갔다,

"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꽃들도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모습을 감추었다 " 양귀비(楊貴碑)가 만져던 그꽃은 바로 함수초(含羞草)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양귀비는 인물뿐 아니라 비파 연주 솜씨도 뛰어나 현종의 딸인 함의공주 결혼식에 연주자로 참석 했다가 현종의 아들인 수왕(壽王)의 눈에뛰게되여 양귀비의 나이 17 세에 수왕(壽王)의 비(妃)에 오르게 되였는데 수왕은 현종(玄宗)의 무혜비(武惠妃) 사이에 태어난 18 번째 아들 이였는데 양귑;는 평소 수왕의 대한 사랑 보다도 현실 권세(權世)에 더 관심을 갖이고 있었다,

현종이 양귀비에게 품고 있는 멈출줄 모르는ㄴ 탐욕과 애정 행각이 양귀비의 권력욕과 맞물려 훗날 비극을 예고 했는데 양귀비의 어여쁜 자태(自態)에 마음을 빼앗긴 현종(玄宗)은 자신의 측근인 환관(宦官)을 시켜 자신의 며느리의 신분인 양귀비와 결합할수 없었기 때문에 중신(重臣)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양귀비의 뜻 이라며 양귀비 나이 22 세에 불가(佛家)에 출가 시켰다,

양귀비(楊貴妃)를 여도사(女道士)인 태진(太眞) 이란 이름의 여승(女僧)으로 만들어 남궁(南宮)에 살게 하면서 세인들에 눈을 피해 결합을 하였으며 현종(玄宗)은 양귀비(楊貴妃)를 27 세때 궁궐로 불러들여 정식으로 자신의 귀비(貴妃)로 책봉하고 양귀비가 거쳐하던 남궁을 태진궁(太眞宮)이라 부르게 했다,

태진궁에서 양귀비와 첫잠자리를 보낸 현종은 양귀비의 방술기교(方術技巧)에 혼이 나갔으며 양귀비의 남자 녹이는 그녀만에 특별한 방술법(方術法)이 있었는지 그져 양귀비와 밤, 낮을 가리지 않고 그짖 ? 만 하였다고 합니다,

양귀비와 꿀맛같은 시간을 보내며 세월 가는줄 모르던 현종은 온천수가 솟아 나오는 곳에 양귀비를 위한 화청궁(華淸宮)을 지어주고 겨울철마다 그곳에 같이 머므르며 함께 목욕하고 해가 중천(中天)에 높이 솟아 올라도 떨어질줄 모르고 오르지 그짓 ? 만을 해가며 깊은 사랑의 늪에 빠져 있었다,

일찍 부모를 여왼 양귀비(楊貴妃)는 양(楊)씨 가문의 양녀로 들어가게 되였는데 양귀비의 환심을 사려고 현종(玄宗)은 양귀비의 환심을 사려고 양귀비의 친인척 사람들을 차례로 관직에 들게 하였느데 특히 양귀비의 양 오빠인 양소(楊蘇)에게는 신임을 더 두워 양극충(楊國忠) 이라는 이름 까지 내렸고 그 외에 많은 친척들이 고관에 발탁 되였다,

정치에서 멀어진 현종(玄宗)은 양귀비(楊貴妃)에 푹 빠져 국사를 그르치며 당(唐) 나라 왕초를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하여 후일 " 아녹사(安祿사山)의 난이 발생하는 직접적인 원인을 만들게 되였습니다,

거대한 중국의 왕조 당나라 왕조를 작은손에 거머지며 절세가인의 전설걱인 인물로 알려져온 양귀비는 새수와 애교로 현종을 사로잡아 과욕있는 단맛과 신맛의 적절하게 어울어진 여지(茹枝)라는 과일을 즐겨 먹었는데 현종(玄宗)은 양귀비(楊貴妃)가 좋아하는 이과일을 공급하기 위하여 원산지 중국 남부에서 장안에까지 통째로 옮기게 하였다고 합니다,

황후(皇后) 같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젊은 양귀비(楊貴妃)에게는 세상에 거칠것이 하나도 없는데 모든 호사를 누리며 세상의 권세(權世)를 한손으로 주므르던 양귀비도 ㅘㄴ 왕조를 시들게 하고 결국엔 " 안녹산(安綠山)의 난 " 에 휩쓸리면서 종말을 고하게 됨니다,

중국 역사상 천하일색 4 대 미인들중에 양귀비가 유독 후세에도 많은 사람들 입에 계속 오르내리게 된 까닭은 무엇 이겠습니까 ?

물론 그녀의 외모에서 풍기는 아름다움이 첫째 이유 이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사람들에 이목을 끌어 당기는 그녀의 파라 만장했던 극적인 삶의 짧은인생 그것을 유도한 당나라의 황제 현종(玄宗)을 사로잡고 거대 역사를 만들어 가며 일세를 풍미하고 화려해 보이나 비극적 이였던 삶이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어 중국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주인공이 되였습니다,

현종(玄宗)은 변방 말갈족과 거란족을 정벌하여 큰 전공(戰功)을 세우고 귀국한 절도사 안녹산을 위한 연희를 흥경궁(興慶宮)에서 열게 되였는데 바로 안녹산과 양귀비는 또 다른 운명의 만남을 하게 되면서 비극의 막이 시작 되였다,

양귀비와 첫 만남후 안녹산은 자유롭게 궁궐을 드나 들면서 양귀비와 접촉을 하게 되였고 안녹산은 양귀비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모든 정성을 다하자 자신보다 나이가 더많은 안녹산을 양귀비는 수양 아들로 삼고 옆에 머므르게 하였다,

양귀비의 마음을 움직인 안녹산은 당시 실권자인 양극충과 태자들도 안녹산을 위태롭게 바라볼 정도로 그 위세를 떨치게 되였는데 안녹산의 체중이 약 2 백 킬로그램 이나되는 대단한 뚱보 였지만 그의 배는 무릎을 덮을 정도 였다고 합니다,

어느날 현종이 안녹산의 불룩한 배를 가르키며 " 그안에 무었이 들어 있는가 ? ' 라고 묻자 " 오르지 폐하의 충성심만 들어 있습니다 " 라고 대답 하였다고 한다,
양귀비는 이러한 성격에 매료되어 그르 가까히 대하였으며 안녹산이 세력을 떨쳐가게 되자 양국충과 태자들은 위험을 느끼게 되였고 이들은 서료 권력을 독점하기위한 암투를 벌리게 되였습니다,

현종(玄宗)을 호위하던 군사들은 양국충을 비롯한 양씨(楊氏)일가에게 난(亂)을 초래한 책임을 물어 현종에게 이들을 사형 시킬것을 강하게 요청하자 현종도 어쩔수 없이 군사들의 요구를 승락하게 되였습니다,

양국층과 일족들의 목을 잘라 처형한 군사들은계속해서 양귀비도 함께 죽여야 한다며 현종을 압박하자 애첩에 대한 아쉬운 미련에 괴로워 하면서도 군사들의 요청을 물리칠수 없었던 현종과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양귀비는 마침내 38 세 젊은 나이로 그녀는 길가의 불당(佛堂)에서 목을메여 자결 하였다,

양귀비는 당나라의 역사를 바꾸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짧은 인생을 비극으로 마감 하였으며 안녹산의 난이 평정된후 현종(玄宗)은 태상황(太上皇)의 지위에 오르고 자신의 아들인 숙종(肅宗)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게 되였으며 다시 장안으로 돌아온 뒤에도 죽어간 양귀비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하였다고 합니다,

중국의 4 대 미인 외에도 고대 중국 왕조는 여자에 의하여 역사가 세롭게 쓰여졎고 미색(美色)에 빠져 왕조가 멸망한 사례가 많은데 경국지색(傾國之色) 천향국색(天香國色)이란 말이 생기게 되였습니다,

하(夏) 나라의 걸(傑) 왕과 말희(妺喜);
은(殷) 나라의 주(紂) 왕과 달기(妲己),
주(周) 나라의 유(幽)왕과 포사(褒似) 는 모두 여자에 의해 왕조가 멸망한 사례입니다,
주나라가 포사에 의하여 멸망한 이후 BC 770 년 부터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로 접어들게 됨니다,

고대(古代)나 현대(現代) 나 남자는 삼첨(三尖)세가지 끝(尖)을 조심하라 하였는데,,,,,,
첫째 세치혀를 조심하라 즉 말조심 하라,
둘째 옷끝을 조심하라, 즉 필화(筆禍) 휘말리지 말라,
셋째 배꼽아래를 함부로 내돌리지 마라, 즉 미색(美色)에 빠지지 말고 여자를 조심하라,
에 세가지를 조심하면 천수(天壽)를 누린다는 공자님의 가르침 같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北部支會長 明泉公波 孫 秉 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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