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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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략장군 휘 유호(攸好)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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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략장군 휘 유호(攸好) 묘소

밀양시 초동면 봉황리(初同面 鳳凰里)

 

시조 문효공(文孝公)의 23세손이며 광리군(廣理君)의 17손이고 밀성군(密城君)의 현손이시고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 휘 하(賀)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울주지사(通政大夫蔚州知事) 휘 복경(卜經)이며 어머니는 박씨(朴氏)인네 봉상대부삼사부사(奉常大夫三司副使) 성리(成理)의 따님이다. 휘는 유호(攸好), 자는 일덕(一德)인데 문중의 음덕으로 벼슬하여 무관으로 첫발을 딛고 1410년 경인(庚寅)에 선략장군관군두모포(宣略將軍管軍豆毛浦)의 벼슬을 제수받고 1419년 기해(己亥)에 우리나라에서 대마도(對馬島)를 동정(東征)할 때 출정한바 있다. 아버지께서 연로하신지라 다시 벼슬할 생각이 없어 밀양 사제(私第)로 돌아와 지성으로 늙으신 아버지를 섬기며 조석으로 모시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公은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기고 신의(信義)로써 친구를 사귀어 종족들이 모두 그 효성을 칭찬하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그 신의에 탄복하였다. 공은 집에 거처함에도 법도가 있었고 몸가짐과 행동함이 엄중하고 진실하여 주위 사람들이 모두다 공경하였다. 공은 비록 달관대사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평생동안 명성과 행실은 유감없이 살다가 1448년 무진(戊辰) 6월 24일에 병환으로 별세하니 공의 나이 77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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