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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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간공(章簡公) 휘 순흥(順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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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간공(章簡公) 휘 순흥(順興)의 정려비(旌閭碑)

구례군 구례읍 봉북리(求禮郡 求禮邑 鳳北里)

 

공의 초휘(初諱)는 정택(正澤)이요 자(字)는 지천(芝川)이며, 선고(先考)는 휘(諱) 돈(惇)이다. 선고(先考)께서 견훤의 난(亂) 때 선봉장으로 섰다가 전사하여 모부인(母夫人)이 구차례(仇次禮)로 피난하여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렸다. 모친의 병환에 지리산을 헤매며 약을 캐어 봉양하였으나 차도가 없었을 때 꿈속에서 백발 노인(老人)이 나타나 효성의 지극함을 칭찬하고 지리산 어느 곳에 가면 산삼(山蔘)이 있을 거라고 해 꿈을 깨어 그곳에 가서 산삼을 캐 달여드렸더니 모친의 병이 쾌유(快癒)하였다. 모친상(母親喪)을 당하여 예제(禮制)를 다하고 화상(畵像)을 그려놓고 매일 봉사(奉祀)하고 3일마다 묘정(墓庭)에 제사지내니 나라에서 들으시고 고려의 성종(成宗)께서 벼 8백석과 은잔 두벌 비단 68필을 내렸고, 성종 16년에는 효자비(孝子碑)와 정려를 내렸다.

융희황제(隆熙皇帝) 6년 무신(戊申)년에 매천(梅泉) 황현(黃炫)선생이 쓴 정려기(旌閭記)가 할아버지의 행적을 더욱 빛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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